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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264번지
  • 장성진 011-538-5599, jsj@mail.com

정구 鄭逑

 
  • 자 도가(道可), 호 한강(寒岡), 시호 문목(文穆)
  • 1543 ~ 1620

역사인물 정보

본관 청주(淸州), 자 도가(道可), 호 한강(寒岡), 시호 문목(文穆)이다. 종이모부인 오건(吳健)에게 수학하였고 조식(曺植)과 이황(李滉)에게 성리학(性理學)을 배웠다. 1573년(선조 6) 유일(遺逸)로 천거되어 예빈시(禮賓寺) 참봉이 되고, 1578년 사포서(司圃署)주부를 거쳐 삼가(三嘉)·의흥(義興)·지례(知禮) 등지의 현감에 임명되었다. 하지만 관직에 나가지 않다가 1580년에야 비로소 창녕현감(昌寧縣監)으로 가서 선정을 베풀어 생사당(生祠堂)까지 세워졌다. 1581년에 지평이 되고 1585년 교정랑(校正郞)이 되어 《경서훈해(經書訓解)》 간행에 참여하고 그후 통천군수(通川郡守)·우승지·강원도관찰사·성천부사(成川府使)·충주(忠州)목사·공조참판 등을 지냈다. 1608년(광해군 즉위) 대사헌이 되었으나 임해군(臨海君)의 옥사가 일어나자 관련자를 모두 용서하자고 상소하고 고향으로 내려갔다. 1613년 계축화옥(癸丑禍獄)가 일어나자 다시 상소를 올려 영창대군(永昌大君)을 구하려 하였고, 향리에 백매원(百梅園)을 만들어 유생들을 가르쳤다.

경학(經學)을 비롯하여 산수(算數)·병진(兵陣)·의약(醫藥)·풍수(風水)에 이르기까지 정통하였고 특히 예학(禮學)에 밝았으며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글씨도 뛰어났다. 그의 학맥은 남명 조식의 문하로 분류되나 정치적 입장에서는 퇴계 이황의 문인으로 분류된다. 특히 남명집(南冥集)의 발간을 앞두고 정인홍(鄭仁弘)이 발문을 작성하는 것에 반대하여 그와 절교하였으며 이로 인해 남명학파 문인들과는 더욱 멀어지게 된다. 그는 경학(經學)을 비롯한 모든 학문에 정통했으며, 특히 예학(禮學)에 뛰어나 저술활동을 많이 하였다. 또한 후진 양성에도 정성을 기울였으며, 당대의 명문장가로서 인정받았다.

그는 인조반정(仁祖反正) 뒤 이조판서에 추증되고, 효종 때는 영의정에 추증되었다. 성주의 회연(檜淵)·천곡(川谷)서원, 충주의 운곡(雲谷)서원, 창녕의 관산(冠山)서원 등과 통천(通川)의 경덕사(景德祠)에 제향되었다. 문집에 《한강문집(寒岡文集)》이 있고, 편저로 《성현풍(聖賢風)》《태극문변(太極問辨)》《와룡지(臥龍誌)》《역대기년(歷代紀年)》《관의(冠儀)》《혼의(婚儀)》《장의(葬儀)》《계의(?儀)》《갱장록(羹墻錄)》 등이 있다.

출처: ⓒ두산백과사전 참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