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동의 고가 : 경당종택

경당종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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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 264번지
  • 장성진 011-538-5599, jsj@mail.com
뒷산을 배경으로 남향으로 자리잡은 종택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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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세소개

경상북도 안동시 서후면 성곡리에 위치하며, 조선 중기의 유명한 성리학자 장흥효(敬堂 張興孝, 1564∼1633) 선생의 후손들이 대대로 살아오고 있는 종갓집이다. 조선 후기 경상북도 북부지방의 전형적인 가옥 구조인 뜰집('□'자집)으로서, 마을이 내려다 보이는 나지막한 언덕에 남향으로 자리 잡고 있다. 본래는 제월대(霽月臺)와 광풍정(光風亭)이 있는 봄파리(春坡)에 있었던 것을 50여 년 전에 지금의 자리로 옮겨 예전의 규모대로 중건한 것이다. 종택의 구성은 정침(正寢)과 동북쪽 뒤편에 있는 사당(祠堂)으로 구성되어 있다.

팔작지붕에 홑처마이고 민도리집으로 정면 6칸 측면 7칸의 '□'자형 평면을 가지고 있다.

건물의 앞쪽은 안채로 들어갈 수 있는 중문이 달려 있는 문간채와 사랑채로 전체 6칸의 규모이다. 정면 3칸, 측면 3칸의 사랑채는 문간채 보다 훨씬 높게 죽담을 쌓고 기둥을 세워 높은 품격을 자아낸다.



정면에 걸려 있는 현판 글씨는 김방걸(芝村 金邦杰, 1623∼1695)의 종손 김구직(南井 金九稷)의 글씨다.

사당은 종택의 동북쪽 뒤에 자리잡고 있다. 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로 맞배지붕집으로 경당의 불천위를 모시고 있다. 춘파에서 옮겨온 후 절 집을 사서 지은 것이다.

경당고택은 역사적으로 중요한 역할을 했던 곳이다. 안동을 중심으로 조선 중기 퇴계학파를 이끌었던 영남 유학의 근간이 되는 곳이기 때문이다. 경당은 어려서부터 김성일((鶴峰 金誠一, 1538~1593) 문하에 출입했고 유성룡(西厓 柳成龍, 1542~1607), 정구(寒岡 鄭逑, 1543~1620)에게 배웠다. 이황의 큰제자 세 사람에게 배움으로써 퇴계학통을 있는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였다.중후(忠厚)와 성실(誠實)을 바탕으로 ‘敬’의 학문을 중시하였던 선생은 책상 위에 커다란 '敬'자를 써 붙이고 생활의 신조로 삼았으며, 자신의 아호를 경당(敬堂)으로 불렀다. 평생토록 명예와 이익을 멀리하여 관직에 나아가지 않았으며, 오로지 후학 양성과 학문 연구에 몰두하였다. 그의 학문은 외손인 이현일(葛庵 李玄逸, 1627~1704)에게 전해져 많은 제자와 문인을 길러내었다.



특히 고택은 안동의 신사임당이라 불렸던 정부인 안동장씨(貞夫人 安東張氏 張桂香. 1598~1680)가 태어났던 곳이다. 경당의 무남독녀로서 이시명(石溪 李時明, 1580~1674)의 배필이었던 장씨는 우리나라 최초의 요리책인 『음식디미방(閨壺是議方)』을 지은이로, 여성 문장가로 이름이 높았다. 『음식디미방』은 지금도 재현할 수 있을 만큼 당시의 요리 종류와 조리법을 상세히 기록해 놓은 책으로 귀중한 사료로 평가 받고 있다. 재령이씨 문중에 불천위로 모셔져 있다.